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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시골 농가에서 태어나 자랐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을 도와 농사일을 하곤 하였다. 농사일은 힘들고 고달픈 기억밖에는 남지 않았다. 하기 싫을 때가 많았지만 부모님께서 고생하시는 것을 보면 어린 마음에도 참아야한다고 생각하면서 일을 계속하곤 했다. 농사일이 좋아서 일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어머니는 아들만은 어떤 일이 있어도 아버지처럼 농사일만 하고 살게 하지 않겠다고 독심을 품고 자녀들 교육에 운명을 걸었다. 고등학교 시절 학업을 중단할 위기가 있었지만 어머니의 성화로 공부를 계속하였고 우리 마을에서는 처음으로 서울 유학도 하게 되었다. 노작이나 노동에 대한 철학이 없었으니 농사일이라면 진절머리를 느낄 만큼 매력이 없었다. 대학에서 교수로 일하는 동안 교육의 중요성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교육의 목적이 인간회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영적으로 인간의 원래의 아름다운 모습을 전존재적으로 회복하는 것이 진정한 교육의 목적이라는 것을 인식하면서 자연스럽게 신체적인 건강의 중요성도 함께 느끼게 된 것이다. 그때 이후로 최상의 행복과 건강을 위한 가장 좋은 선택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가는 것임을 알게 되고 출퇴근이 가능한 곳에 농지와 집을 구하고 자연친화적인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 후 30여년 이상 자연을 즐기는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토질 개선과 인간 회복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는 한평생 흙 속에 묻혀서 사시면서 손마디가 굵어지셨고 얼굴 곳곳에 주름살이 늘어나셨다.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는 나의 부모님을 말하는 것이지만 또한 여러분의 부모님이시기도 할 것이다. 이른 새벽이면 벌써 일어나셔서 들로 나가시고 저녁노을이 사라지고 어두움이 짙어올 때 집에 들어오셨다. 학교란 초등학교나 졸업하셨을까 말까 그래도 틈틈이 성경을 읽으시는 모습을 보곤 하였다. 아마도 성경을 읽으면서 한글을 깨우치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당신들이 배움이 없으셔서 이렇게 땅만 파고 농사짓고 사는 것이 한이 되었든지 자녀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공부를 시켜 출세시키려고 비지땀을 흘리면서 살이 닳고 뼈가 부스러지도록 흙투성이가 되어 사셨다. 모처럼 새 구두를 사거나 난방셔츠나 양말이 선물로 들어오면 아껴두셨다가 아들이 오면 남김없이 다 내 놓으셨다. 당신들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그렇게 아끼면서도 자녀들을 위해서라면 남김없이 다 내 놓으셨던 것을 지금은 모든 것이 사랑으로 바뀌어 마음속에 느끼고 쌓이고 있다. 한 평생을 그렇게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면서 흙 속에 파묻혀 사셨다. 그러다가 마침 직장 생활을 시작한 아들에게서 호강을 받으실 만할 때에 아버지께서 먼저 흙으로 돌아가셨다. 지금 생각만 해도 눈물이 앞선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자마자 논으로 밭으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하여 아버지를 도와 온갖 힘든 일을 배우면서 따라 하였다. 모를 심고 논의 잡초를 뽑고 산에서 나무를 해오고 손이 부르트고 어깨가 지게질로 벗겨져도 열심히 일을 따라 했다. 흙을 만지며 일하는 것이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었다. 가족과 자식들을 위하여 일만 하고 사시는 부모님께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지 않을까 하여 그렇게 하였다. 집에 오면 책보자기를 던져 놓고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싶은 생각이 얼마나 간절했겠는가! 농촌에서 땅 파고 일하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인가를 시간이 지나면서 더 뼈저리게 느꼈다. 힘들게 일하는 것이 자주 고통스럽게 생각되었다. 때때로 일하는 것이 지겨웠다. 자연친화적인 삶에 대한 개념이나 철학이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흙을 만지면서 흙 속에 파묻혀서 비지땀을 흘리면서 일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 되는 것인가를 깨닫기 시작한 것은 그 뒤로 오랜 세월이 흘러간 뒤였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시해되었다는 비보를 전해 듣던 날 그 다음 해에 1학기와 2학기 모두 학기를 시작한지 1-2주일도 안되어 전국 대학에 내린 휴교령 때문에 거의 공부를 하지 못하였다. 학생이 없는 대학 교정을 지키고 시간을 보내면서 만감이 교차되었다. 참 교육이란 무엇인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교육에 대한 서적들을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다. 우리 대학이 가지고 있는 교육 이념에 대한 더 깊고 숭고한 뜻을 새롭게 되새기고 간직하는 기회가 되었다.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그리고 영적으로 잃어버린 인간의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 참 교육의 목적이다. 전 존재적으로 인간 안에서 잃어버린 조물주의 형상을 회복한다는 사실은 이보다 더 귀하고 넓고 높고 깊은 목표가 있을 수 없다고 하는 사실을 동시에 보여 준다. 참 교육은 교과서를 통한 교육뿐만 아니라 육체노동을 통한 일상생활의 체험은 물론 순결과 사랑의 정신을 배양하는 균형 잡힌 인간성을 완성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해 주었다. 흙을 만지면서 땀을 흘리며 일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경험인가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 후 얼마 안 되어 자동차나 경운기가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는 하늘과 땅이 맞닿는 골짜기에 터전을 마련하고 농촌 생활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농사를 주업으로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흙속에 파묻혀서 땀 흘리며 일하는 것이 인간의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 가는 첫 걸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으므로 이것을 몸소 실천하고 싶었던 것이다. 한편으로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을 하고 틈틈이 일평생을 흙과 함께 살아온 이웃들과 한데 어우러지면서 비지땀을 흘렸다. 직장인의 건달 모습에 대한 오해를 벗어버리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땅을 파고 풀을 뽑아내고 귀한 곡식을 가꾸는 일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과였으며 무한한 인내와 신념과 노력을 요구하였다. 경험이 많은 주위 분들에게 묻기도 하고 관련 서적들과 농사정보들을 접하여 배우기도 하면서 처음부터 유기농법으로 하는 농사를 시도하였다. 갑자기 화학 비료를 중단하고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엄청난 모험이었고 어쩌면 불가능한 일처럼 생각되었다. 그러나 최선의 길을 걸어가겠다고 하는 소박한 꿈을 져버릴 수는 없었다. 기대에 어긋난 결과를 보면서 실의에 빠져 낙담하기도 하였으나 이러한 시행착오는 때때로 새로운 도약의 계기가 되어 주기도 하였다.
아마도 이렇게 2-3년이 지나갔을 때였다. 배추 잎에 메뚜기들이 날아다니고 흙속에는 지렁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나중에야 더 확실하게 알게 되었지만 제초제나 농약을 제거한 뒤로 2-3년이 흐르면서 흙속에 무수한 미생물들이 원래의 모습으로 서식하게 되고 수많은 천적들이 생겨나서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놀라운 결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제야 효소 처리한 퇴비를 많이 사용하면서 토양의 질을 바꾸어 가는 유기농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경험으로 알게 되었으며 아울러 토질개선이 체질개선과 똑 같은 원리로 연결되어 있다는 신비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흙으로 빚어진 인간이 마침내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는 거스를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은 죽음이라는 필연성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하나의 객으로 머물러 있는 동안에도 친환경적인 삶이 가장 인간답게 사는 것이라는 귀중한 철학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가장 소중한 경험
위에서 말한 자연친화적인 삶이 주는 위에서 말한 여러 가지 유형적인 유익들도 귀한 것이지만 이보다 더 소중한 것은 사람으로서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이런 자연 친화적인 생활이 우리에게 미치는 가장 의미 있는 삶의 체험과 교훈일 것이다. 자연친화적인 삶이 주는 이런 무형적인 유익들은 매우 다양하지만 우선 노동의 축복, 참된 자유, 그리고 바라봄으로 변화하는 참 교육의 체험을 간결하게 정리해 보려고 한다.
1. 노동은 저주가 아니고 축복이다.
사람들은 보통 땀을 흘리면서 일하는 것을 천하게 생각한다. 옛날 양반들이 세력을 잡던 시절에는 요즈음과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누구나 선호하는 의사나 간호사나 약사와 상인 그리고 기술자들은 천대를 받는 직업이었다. 그러나 사유재산을 존중하고 시장경제를 표방하는 사회에서는 돈이 많으면 왕처럼 살고 돈이 없으면 하루아침에 거지가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돈을 잘 버는 사람이나 직업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돈을 많이 벌려고 하고 할 수 있는 대로 쉽게 돈을 벌려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일은 힘들고 돈벌이는 적은 노동을 백안시하게 되었다. 종교인들도 땀을 흘리면서 일하는 것은 죄를 범한 인간이 받는 벌과 저주로 생각하는 자들이 많았다. IMF 이후 실직자와 점증하는 노숙자 문제는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러나 한번 쯤 이렇게 묻고 싶다. 경제가 어려워서 정말 일자리가 없는 것인가?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실업자가 늘고 취업이 어려운 지금도 일할 사람을 구하기가 어려워 외국인 노동자들을 사용하는 회사들이 부지기수이다. 땀을 흘리는 일은 싫어하고 쉽게 돈을 많이 벌려고 하는 생각과 자세도 실직자나 노숙자 증가의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다. 농사를 지으면서 육체노동을 하는 것이 더 이상 천박한 일이 아니고 사람을 가장 복되게 하는 천직이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농사가 안정된 복지사회 건설의 천하지 대본(天下之大本)이라는 것도 음미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육체노동은 우선 건강유지에 필수적이다. 걷기나 조깅처럼 건강을 위한 운동도 필요하지만 땀을 흘리는 노동은 육체건강에도 좋고 정신건강에도 좋다. 사람이 흙을 만지면서 일을 하는 동안 흙은 사람을 만든다. 땅을 파고 씨를 뿌리고 잡초를 뽑는 일은 힘이 들지만 인내와 성실 그리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중요한 교훈을 체험하게 한다. 마침내 수확의 계절에 느끼는 그 보람과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감을 가져다준다. 열심히 일을 하는 사람은 죄를 지을 시간이 없고 밤이면 단잠을 자게 된다. 스트레스로 고통하거나 공해에 찌들려 기침을 하며 병약한 생활을 할 필요도 없게 된다. 팥 심은데 팥 나고 콩 심은데 콩 나는 인과응보의 법칙은 정직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느끼게 한다. 그리고 흙을 만지면서 땀을 흘리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가를 실감하게 된다.
2. 참된 자유를 누리는 사람은 왕도 부럽지 않다.
자유란 인간의 가치 있는 삶에 있어서 매우 소중한 조건이다.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직장에서의 상하관계와 같은 직장윤리를 잘 알고 있다. 직장 동료들 간의 상하관계가 원만하지 못하고 승진이나 직장 이동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자존심이 상하게 된다. 이런 소외와 불만이 해결되지 못하면 하루하루가 고달프고 한 맺힌 나날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비록 영토는 작아도 자기 땅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라. 적어도 그 땅 안에서는 자신이 왕이 되는 것이다. 아무도 간섭하는 사람이 없다. 나무를 여기저기 옮겨도 누가 시비하는 사람이 없다. 자기 땅에서 이런 절대적인 자유를 경험하는 자들은 직장에 가서도 공동생활에 더 잘 적응할 것이다. 왕처럼 자유를 누린 사람은 종처럼 섬기는 일도 잘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의 인간으로서 상하종속관계를 떠나서 자기 홀로 살 수는 없으나 제한된 시간이기는 하지만 자기 땅에서 자기의 뜻을 펼치면서 자기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분명 행복한 자들이다. 그들은 집에서나 밖에서나 언제나 행복을 만들고 행복을 나누는 평화의 사도(peace maker)가 될 것이다.
3. 바라봄으로 변화한다.
이것은 교육의 대원칙이다. 사람은 무엇을 바라보는가에 따라 이에 상응하는 영향을 받게 된다. 도심지역에는 거의 모든 것이 다 인위적인 것으로 채워져 있다. 잘 포장된 도로, 상자처럼 쌓아올린 빌딩 숲, 주야로 반짝이는 찬란한 인공조명, 가로수나 정원의 나무도 다 다듬어 놓았다. 편리하고 이상적인 생활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교육적 효과에서는 자연환경과 비교하여 부족한 점이 너무나 많다. 눈만 뜨면 신록이 우거진 아름다운 숲과 산과 골짜기에 흐르는 물, 그리고 지저귀는 새소리와 떠오르는 태양과 저녁노을, 이런 자연은 위대한 교육자이다. 왼쪽 두뇌만 발달시키는 교실의 주입식 교육 위주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천연계 속에서 지성과 인성교육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균형진 교육을 실행하는 것이 절실하게 필요 되고 있다. 교과서를 통한 지적 교육과 육체노동을 실행하는 노작교육 그리고 덕성을 중시하는 신앙교육이 잘 어우러진 전인교육은 이 나라의 미래의 지도자를 양성하는 가장 바람직한 교육이 될 것이다. 그래서 학교는 노작교육과 함께 지성과 인성교육을 병행하여 전존재적인 인간회복에 가장 잘 어울리는 곳, 바로 아름다운 자연의 품속에 교육장소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환경건강이 중시되는 시대에는 교육환경 뿐만 아니라 개인이나 가정의 주거환경도 이런 교육적인 효과를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흙은 인간의 근본이라고 하였다. 흙속에 파묻혀서 온 몸이 땀범벅이 되어 삶의 한 순간을 보내노라면 흙은 우리의 어머니인 것처럼 어느새 우리를 감싸 안는다. 이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여유가 생기고 쉼과 자유가 솟구쳐 오른다. 아무에게도 어떤 간섭을 받지 않는 곳 그러면서도 가장 미미한 것일지라도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지 않는 천연계의 품속에서 이제는 왕도 대통령도 더 이상 부럽지 않다.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인간의 본연의 모습을 되찾아 가는 것이다. 자연 친화적인 삶속에서 사랑과 인정으로 얽혀진 인간의 원래의 행복과 존엄성을 회복하겠다는 것이다. 흙으로 돌아가라. 사람이라면 이보다 더 좋은 선택이 달리 없으리라. 이런 자연친화적인 삶의 자연스런 결과는 최상의 건강과 행복이다. 자연으로 돌아가면 건강이 보인다.
작성자 :
paul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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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8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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