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산책길 319호 박기식(위암) 일어나서 옷을 주섬주섬 입고 보니 새벽 5시경, 차 열쇠를 가지고 문을 나선다. 2층 로비를 지나 현관문을 열고나서면 상큼하리만큼 맑은 공기가 콧속으로 들어오며 가슴속까지 시원함이 전해진다. 승용차 문을 열고 빗자루와 야전삽이 들어 있는 작은 배낭을 등에 메고 산책로로 향한다. 내딛는 발걸음이 이렇게 가볍고 즐거울 수가 없다. 오늘은 가장 경사가 심한 곳부터 계단을 만들기로 했기에 우선순위를 정해 본다. 가장 환우 들의 왕래가 많은 곳과 모래가 많아 미끄러움이 심한 곳부터 계단을 만든 뒤 빗자루를 들고 호기 있게 쓱쓱 쓸어보았다. 보통 힘이 드는 게 아니다. 이렇게 쓸다가 어느 세월에 이 긴 산책로를 다 청소할 수 있단 말인가. “휴우~. 안되겠다”. 10m를 더 올라가서 밑으로 쓸어보니 이번엔 아주 빗자루 놀림이 쉽고 경쾌하다. 다시 꼭대기로 올라가 쓸어 보았다. 역시 힘도 적게 들고 능률도 아주 좋다. 이래서 머리를 써야하는구나. 그러나 오랜 작업은 힘에 부친다, 역시 어쩔 수 없는 환자인가 보다. 잠시 뒤돌아보면 몇 일째 꿈에서도 그렇고 산책을 하면서도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계속적으로 돌아가신 분들의 얼굴이 영상처럼 떠오르고 지우면 또 떠오르고…….아주 불길하고 기분이 좋지 않아 기타 선생님인 장로님께 그간의 일과 심정을 얘길 해 보았다. 그랬더니 웃으며 성경 공부를 해 보라고 권유한다. 밑져 봐야 본전이라고 생각하고 성경공부를 하기로 결정하고 집에 전화해서 성경 한권을 사 놓으라고 했다. 그리고 잠을 청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니, 놀랍다는 말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그렇게 지우려고 애써 봐도 자꾸만 보이던 허상 같은 돌아가신 분들의 모습이 일부러 떠올려 보아도 예수님의 인자하신 얼굴만이 어렴풋이 보이고 다른 모습은 떠올려지지 않는 것이다. 실로 며칠 만에 아주 편하게 잠자리에 들 수가 있었고, 상쾌하게 아침을 맞을 수 있었다. 기분 좋은 마음으로 이튿날 평소에 알고 지내는 여성분과 산책을 나섰는데 몸이 너무 안 좋으셔서 조금만 비탈져도 매우 힘들어 하시고 경사가 심한 곳은 아예 걸음이 아니고 더듬어 내려오는 것이 아닌가. 나는 쉽게 다니는 길인데, 남들에겐 고된 수행의 길이 될 수도 있구나 싶었다. 안되겠다. 내가 이 길을 편안하고 쉽게 산책할 수 있는 길로 만들어 보자. 결심하고 바로 집에 전화해서 빗자루와 야전삽도 구해 놓으라고 했다. 그런데 내게 또 신기한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길을 만들기로 마음먹고 준비를 하고 있던 어느 날, 평소와 같이 새벽 6시경 산책길에 나서서 200m 정도 올라가서부터 평소 나의 웃음치료 코스에 들어서서 웃기 시작했다. (나는 멀리 들리게 소리 쳐서 웃는 게 아닌 내 귀에 들릴 정도만 웃는다) 10m 쯤 웃으며 걷는데, 내 앞으로 예수님이 나타나신 것이다. 너무나 인자하시고 너무나 사랑스럽고 그런데도 어찌나 익살스런 모습을 하고 있는지 이 세상에 저렇게 웃길 수 있는 개그맨이나 코미디언이 있다면 한순간 대 스타가 될 것 같다. 나는 숨을 쉬는지 걷는지 무아지경에서 300m즘 지나왔다. 그리곤 그렇게 행복한 웃음을 나누며 내가 평소 도토리 싹을 관찰하는 곳에 도달했을 무렵 예수님은 사라지셨다. 뱃가죽이 당길 정도로 웃었던 모양이다. 기분은 하늘을 날아갈 것 같은데 걱정이 덜컥 되었다. 나는 이제 겨우 성경공부 하겠다고 결심하고 3일째를 맞은 햇병아리일 뿐인데, 예수님과 친구처럼 웃었다는 게 불경한 짓을 한 것 같아서 불안했다. 내려와서 몇몇 분께 물어보니 “좋겠다” “아무것도 아니다” 심지어는 30년을 교회 다녀도 한번 뵙지 못했는데, “거짓이 아니냐” 등, 의견들이 제 각각이었다. 나는 혼자 생각해 보았다. 나에게 보여진 이 상황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내가 내린 결론은 몸은 비록 환자로 있지만 현재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제대로 찾았다는 주님의 격려와 칭찬, 그리고 예수님을 알아가고 내 곁에서 약해진 몸을 지켜주시며, 연약한 마음도 지켜주시리라는 믿음의 증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휴식을 끝내고 다시 쓱쓱 비질을 하니 웬 내리막만 있어야 하는 길에 오르막도 있다. 반복되는 작업 중에 오르막길의 내리막은 오를 때 쓸고 내리막길의 오르막도 오를 때 쓸어야 쉽게 쓸 수 있다는 원리를 터득했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에 잠겨 어느덧 끝 지점에 이르렀다. 크게 숨을 내 쉬며 오늘의 일을 되돌아보았다. 많은 이들이 내 행동을 칭찬한다.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시키지도 않은 일을 왜 그렇게 열심히 하느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다. 길을 깨끗이 하는 이 과정이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하는 일이 아님을,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낮은 일일지 모르지만, 늘 고개를 숙이고 아래를 내려 다 보며 스스로를 겸손하게 하고, 작은 미물의 움직임에도 관심을 가지며, 건강할 때는 몰랐던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과 더 어려운 사람들의 고통도 조금은 알게 되는 과정이란 깨달음도 얻었다는 것을. 그리고 세상을 위해 기꺼이 낮은 길을 택하셨던 예수님처럼 별것 아닌 일일지 모르지만, 내 작은 마음의 실천이 다른 이들의 발걸음에 행복이란 이름으로 돌아오길 바래본다. 나는 하루 중 이 일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 비록 몸은 조금 힘들지만 마음만큼은 세상 무엇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즐겁다.
암 종양지수 4월 2일 입원 시 검사 167
6월 7일 최근 검사 23으로 눈에 띄게 떨어짐
T 임파구
4월 2일 입원 시 검사 T4 21/ T8 42 (T4는 늘어나야 함/ T8은 줄어들어야 함)
6월 7일 최근 검사 T4 41/ T8 26으로 정상 수치 나타냄
나는 기도한다. 적어도 내가 이 일을 행할 때 갖는 벅찬 행복감을 이 길을 걷는 모든 환우들이 함께 느낄 수 있게 되기를. 그리고 에덴의 환우들이 비록 몸은 연약해진 상황이지만, 마음만은 그 누구 보다 건강하기를 기원해 본다. 작업을 마치고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나무 사이로 전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이한다. 가슴 가득 건강한 행복이 바람을 타고 전해온다. 나는 오늘도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작은 일을 행하며, 행복한 즐거움을 느낀다. 내가 느끼는 이 행복한 즐거움을 다른 이들도 함께 느끼길 바라며 오늘도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가 되기를 기도한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내 몸은 이렇게 눈에 띄게 건강을 회복하고 있으며, 오늘도 달라질 내 몸에 대한희망으로 하루하루를 감사의 마음으로 생활하고 있다.
작성자 :
에덴요양병원
|
2011.06.02 12:33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