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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에는 자신이 있었는데.... 이수영(폐암)
금년 4월 20일 저녁 무렵 갑자기 양발, 손끝이 저리고 왼쪽 허벅지 근육이 뭉치고 아파서 밤새 주무르면서 뜨거운 물수건으로 찜질을 했으나 통증이 가라앉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 잘 알고 지내는 한의사 에게 전화를 걸어 지난밤 통증에 대하여 상세히 이야기를 하고 적절한 치료방법을 상담 했더니, 내 나이에 여러 가지 여건상 중풍이 올수가 있다며 가까운 종합병원 신경외과에 가서 정밀 진단을 받아보는 것이 좋겠다고 권유했다. 그래서 사무실 근처에 있는 종합병원 신경외과에 가서 입원을 하게 되었고 그동안 여러가지 검사를 거쳐 신경외과적인 시술을 받은 결과 손, 발이 저린 현상은 많이 완화되었으며, 또한 왼쪽 허벅지 뒤편 근육통도 말끔히 치료 되었다. 입원 4일째 되는 날 오후에 평소 잘 알고 지내든 원장 선생님이 나의 병실을 찾아와서 같이 방문한 담당의사에게 차트를 받아 한참을 살펴보더니 “이 환자분 내과 관련 소견 있구먼” 하며 내과 병동으로 옮기고 가슴 정밀 CT 촬영을 지시했다. CT촬영을 하고 26일 오전 퇴원 준비를 하고 있는데 병원장님이 보호자를 찾으며 면담을 요구했다. 순간 가슴 한편이 덜컥하며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나는 평소 운동을 좋아하고 특히 60대 초반까지 부산일보, 국제신문에서 주최하는 바다 하프 마라톤에 출전하는 등 건강에는 자신이 있었기에 별것은 아닐 거라 생각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데 처와 의사선생님이 내게 다가와 이곳에서는 여기가 한계이고 나머지는 서울 큰 병원에 가서 정밀 진단을 받으라고 했다. 도대체 무슨 병이냐고 반문하자 CT상에 오른쪽 폐에 약간의 염증이 있는 것 같은데 몇 일간 치료를 받으면 나을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했다. 4월 29일에 서울대 병원에서 5월 1일 흉부내과에 예약되었으니 진료의뢰서 및 CT촬영결과를 지참하고 와서 검사를 받아보라는 연락이 왔다. 상경하여 서울대 흉부내과 교수님께 진단을 받은 결과 현재 폐암 1기말이며 3cm 직경의 암이 우측 폐 상단에 자리하고 있고 수술 가능성 여부는 약 1주일간 입원하여 정밀 검사를 받아 보아야 결정할 수 있다고 했다. 순간 꽝하고 머리를 쇠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한동안 멍하니 정신이 없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부산의 입원했던 병원에서 오진을 했거나 또는 별로 대수롭지 않은 질병이려니 여기고 심각한 결과는 예상도 안했다. 평소 담배를 피우지도 않았고 폐암에 걸릴만한 작업환경에 노출된 경우도 없었으며 건강관리에도 남다른 열의를 갖고 있었기에 폐암이라는 결과가 너무나 믿기지 않았다. 내겐 지금 병약한 아내와 아직 출가전인 자녀가 있고 무엇보다도 한창 경제 활동을 해야 하는 내가 활동을 접는다면 과연 가족들이 이 험한 세파를 헤쳐 나갈 수 있을는지……. 여러 생각이 어지럽게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멍하니 앉아 있는 네게 담당 교수님은 옛날에는 암이라고 하면 불치의 병으로 여겨 삶을 포기하려는 사람들도 간혹 있었으나 현재는 의술의 발달로 암도 적극적인 치료로 잘 관리하면 나을 수 있는 병이라고 위로하였다. 병원 문을 나서며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하나님 제가 무엇을 잘못하였습니까? 왜 저에게 이런 혹독한 시련을 앉기십니까? 도대체 저는 어떻게 하여야만 합니까? 집에서 저를 기다리는 가족들에게 무어라 말해야 합니까? 라며 너무나 복잡하고 서러운 마음을 토로할 때 가슴한쪽이 울컥 했다. 집에 돌아 와서 경과를 묻는 가족들에게 차마 폐암이라는 말을 못했고 그저 폐에 조그마한 염증이 생겼는데 며칠 치료 받으면 나을 수 있다고 말하면서 일부러 명랑한 체 크게 웃었다. 서울대 병원에서 입원실이 있으니 올라오라는 연락을 받고 5월 5일 아침 마치 근교 산에 등산이라도 하려는 듯 한 가벼운 차림으로 가족들에게 며칠 간 잘 쉬고 올 테니 걱정 말라고 안심시킨 뒤 서울대 병원에 입원했다. CT검사 내시경 검사 피검사, 조직 검사 등 여러 가지 검사와 PET 검사까지 완료한 후 흉부내과 교수께서는 검사결과를 보며 “환자분의 질환은 폐암 중 가장 순한 선암이며 수술 가능한 부위입니다. 폐암환자가 수술을 할 수 있는 비율이 12~15%이내인데 그 안에 있으니 얼마나 선택받은 일이냐”며 다른 교수님 한분을 수술 집도 하실 분이라고 소개하면서 수술 일정이 11일 월요일 첫 시간으로 결정되었으니 내과병동에서 외과병동으로 옮겨서 수술 준비를 하란다. 또한 수술동의서에 보호자 서명 날인이 필요하니 절차상 보호자가 반드시 와야만 한다는데 사실 가족들에게 폐암이라는 사실 자체도 말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난감했다. 어쩔 수 없이 서울에 있는 딸에게 잠깐 병원으로 오라고 하고 그동안의 사정 이야기를 한 후 서명날인을 받았다. 11일 아침 7시 수술실에 들어간 것 까지는 기억했으나 정신을 차려보니 수술은 이미 모두 끝났고, 코에는 인공호습기 입에는 가래제거 호수, 옆구리에는 불순물 배출 호스 두 개, 팔에는 링거주사 등이 주렁주렁 붙여진 상태로 응급실에 누워 있었다. 일어나려니 오른쪽 가슴부위가 너무 아프고 힘이 없어 다시 눕고 말았다. 13일 일반 병실로 옮겨 22일까지 수술부위에 대한 치료를 받았으나 그때까지도 숨이 차고 기침이 많으며 기관지 부위가 몹시 불편한데도 불구하고 병원에서는 병실 부족을 이유로 무조건 퇴원을 권했다. 어쩔 수 없이 퇴원하여 아픈 몸을 이끌고 서울 동생 집에서 하루를 보냈고 처의 권유로 23일 아침 일찍 남양주 수동면에 있는 에덴요양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입원 당시에는 수술부위 통증이 너무 심하고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로 숨이 많이 가쁘고, 또한 심한 기침으로 기관지가 아파 거동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후에 들은 이야기 이지만 수술도중 기관지를 잘못 건드려 후유증이 생겼으며 그로 인하여 목이 많이 아팠고 기침이 많으며 숨이 찬 증상이 심하다고 했다. 같은 병실에 입원해 있는 동료들은 서리산을 거쳐 축령산까지 주파 하는 등 체력을 과시하는데 나는 심한 통증으로 인해 현관 앞까지도 제대로 거동하기가 힘들었다. 입원한지 2~3일 동안 거의 식사를 할 수가 없었다. 병원 측에서는 물은 많이 마실 것을 종용하였고 스스로 걷는 운동을 많이 하라고 당부 하였다. 이왕 이곳 에덴에 왔으니 남들보다 앞서가지는 못하지만 남들만큼은 따라가야 하지 않겠는가. 라 다짐하면서 입원 5일 만에 내발로 걸어서 처음 분수대까지 가게 되었고, 6일째 되는 날엔 병원 앞 잔디공원, 그리고 이튿날에는 병원 환자들이 깔딱 고개(병원에서 300m거리)라고 이름 붙여준 고개를 1/3까지 가게 되었고, 그때부터는 내가 간곳에 나만이 알아 볼 수 있도록 표시를 해두고 아무리 힘이 들어도 전날 내가 표시해둔 지점은 반드시 통과하여 최소 10m 이상은 초과해서 걸어야 한다는 결심아래 깔딱 고개까지 올라가는데 거의 10여일이 결렸다. 이렇게 강행군 하다 보니 배가 고팠고 평소 싱거워 싫어했던 이곳 식사가 제법 맛있어 졌으며 밥 한 공기를 모두 비우게 되는 단계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그때까지도 마약성 진통제 스테로이드계 기관지 천식 가래제거제 소화제 기관지확장제, 변비약 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약을 계속 복용하고 있었고 약을 끊으면 큰일 나는 줄 알았으며 실제로 하루에 3알씩 복용하던 진통제를 하루 동안 끊어보니 수술부위에 심한 통증과 계속되는 가슴부위 통증으로 인하여 그 날 밤에는 잠시도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구나 싶어 이튿날부터 5일 간격으로 하루 3알이던 진통제는 2알 그리고 5일후부터는 1알 다시 5일 후에는 진통제를 완전히 끊었다. 약을 끊은 첫날 물론 가슴부위에는 간혹 적인 통증이 있었지만 이 병원 의료진도 그리고 주위 분들도 모두 권하는데 설마 환자에게 불이익이 되도록 하랴 싶어 그분들의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 그러나 숨이 가뿐 부분 심한 기침 가래제거제등의 기본 약제는 끊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우선 밤에 심한 기침을 해대니 옆에 환우가 잠을 잘 수가 없고 쉴 새 없이 나오는 가래로 인해 수시로 화장실을 들락거려야 하니 나도 잘 수가 없고 가쁜 숨으로 인하여 낮에 제대로 운동조차 할 수가 없으니 몸이 많이 피곤하고 입맛도 떨어지는 약 순환의 연속이었다. 할 수 없이 약을 끊긴 끊되 나름대로 생각해서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약부터 순차적으로 끊기로 하고 기침과 가래제거제를 제외한 약들부터 끊으며 서서히 줄여 가도록 했다. 그렇게 해서 7월초 경에는 모든 약을 완전히 끊었다. 약을 끊기 몇 일전 2개월분의 약을 처방 받아왔으나 2개월분의 약은 약포장지도 풀지 않은 채 모두 버렸다. 약값이 37만여 원이 이었지만 과감히 눈 딱 감고 전부폐기 처분한 것이다. 아직도 경사가 심한 산에 올라갈 때나 산책길을 빨리 걸을시 에는 숨이 많이 차고 간혹 적으로 기침은 나지만 그 동안 거의 매일 하루에 4회씩 (아침전 후 점심후 저녁후)1일 약 20~ 28KM의 거리를 걷는다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 이를 지속적으로 이행했고 주위에 있는 800m 이상의 산(서리산 3회 주금산 2회 추령산 1회 천마산 1회)들은 거의 다 오르내렸다. 병원에서 제공하는 현미밥과 과일 무공해 야채 식단을 충실히 지켰고, 외출 시에는 외식을 거의 하지 않고 병원에서 주는 건식과 과일 물 등을 지참하고 다니면서 해결하는 등 철저히 병원식단을 따라 했다. 이 병원 식단 이야말로 어떤 치료약보다 암 치유에 가장 효과적 이라는 것은 11월 19일자 생로병사의 비밀이라는 프로를 보고 다시 한 번 확신했다. 얼마 전 서울대 병원에 가서 x레이 검사, 피검사(암수치검사), 등 검사결과 기관지나 폐 부위 기타 수술 부위 등은 깨끗이 완쾌되었으니 이제 흉부내과에는 오실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것만 해도 얼마나 기쁘고 감사했는지 모른다. 아직은 암의 전이 피부체크와 CT검사 등은 하지 않아서 암의 치료 상태는 자세히 모르겠으나 나는 확신한다. 반드시 지금 앓고 있는 질병으로부터 영원히 해방되리라는 것을... 그리고 특히 중요한 것은 폐암 환자나 호흡기 관련 환자에게는 이곳 에덴동산은 정말 천혜의 자연 환경이 어우러진 지상의 파라다이스라 아니할 수 없다. 우거진 숲 사이로 미로처럼 이어진 환상의 산책길 피톤치드가 가장 많이 발생한다는 아름드리 잣나무 숲속, 그 안에 아늑한 휴식공간 폐부 깊숙이까지 스며드는 오염되는 않은 맑고 깨끗한 공기 계곡사이로 졸졸졸 흐르는 맑은 물, 그 물소리, 바람소리, 산새소리 어느 것 하나 정겹지 않은 것이 없다. 이제 그동안 정들었던 병원 문을 나서려 한다. 조금은 두렵고 염려스럽지만 집에서 기다리는 가족들 품으로 돌아가 일상생활로 복귀하는 기대감이 크다. 에덴의 환우 여러분 치유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확실한 목표를 세워 지속적으로 즐겁게 투병생활을 한다면 반드시 여러분의 머리위로 밝은 태양이 환하게 비취지리라고 확신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수 영 (폐암 2기초)
작성자 :
에덴요양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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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02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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