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같은 만남 담양에 있는 양지원 노인 복지 센터에 도착했다. 대나무로 유명한 고장이라 그랬을까. 더위를 식혀 주는 바람이 대숲에서 불어오는 듯 더욱 싱그럽게 느껴졌다. 오랜만에 느껴 보는 그림같이 펼쳐진 남도의 멋진 풍경에 한껏 젖어 들다 보니 어느새 햇살 곱게드는 양지원 앞마당에 들어서 있었다. 양지원 노인 복지 센터를 운영하는 하종삼(53),최향순(51) 부부가 반갑게 우리 일행을 맞아 주었다. 화단 조성이 한창이었고 아담한 양지원 간판이 걸린 단층 건물 주변에는 아직도 집 두 채가 지어지고 있었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곳이라는 걸 한눈에 느낄 수 있었다.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지금 여기 98세 된 이사영 할머니가 계시는데, 20여 년 전 그분을 처음 만났던 게 저희에겐 운명이었던 것 같아요. 당시 홀로계신 할머니가 안쓰러워 자원봉사자와 연결시켜 드리고, 남보다 조금 더 관심을 보여 드렸지요.”
이야기를 나눌수록 참 자기 자랑과는 거리가 먼 분들이라고 느꼈다. 두 사람이 양지원 노인 복지 센터를 정식으로 시작한 것은 올해부터라고 한다. 그전에는 건강 관련사업도 했고, 주변의 노인 복지관, 요양원등에서 복지 관련 경험을 했다고 한다.
“우리 부부는 본래 사회 복지에 관심이 많았어요. 처음에는 고아원을 운영하려고도 했지요.”
“양지원은 어떤 곳입니까?”
“어르신들이 여생을 편안하게 웃으면서 보냈으면 하는 저희 부부의 바람이 담긴 곳입니다. 노인 장기 요양 보호법에 따라1, 2등급에 해당하는 분들이 오실 수 있습니다.”
오직 사랑으로
“양지원만의 특징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첫째는 음식입니다. 100퍼센트 채식입니다. 밥은 현미밥이고요. 장인어른이 1970년대부터 단식원을 오래 하셨었죠. 장인어른의 도움과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어른들이 본래 젓갈, 짠 음식 같은 걸 좋아하시잖아요. 하지만 저희는 균형진 완전 채식이 어른들 건강관리에도 효과가 탁월하다고 확신합니다. 처음에는 현미밥을 안드시려 해서 식습관 바꾸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꾸준히했더니 이내 익숙해지셨어요.”
부부는 어르신 대부분이 여기 오실 때 변비가 심한 상태라고 말한다.
“그런 상태로 오신 분들에게 저희는 식생활 개선부터 철저히해 드립니다. 저희 가족은 못 먹더라도 아침마다 사과즙을 해 드립니다. 토마토 등 각종 채소, 과일과 견과류를 갈아서 드리면 드시던 변비약도 더 이상 복용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부부는 또 이사영 할머니의 이야기를 이어 갔다.
“이분이 우리가 이곳을 운영하기 전까지는 다른 요양원을 전전하셨어요. 여기 오시기 전까지는 치매가 심해지셔서 사람도 못 알아보고, 거의 돌아가신다고 봤어요. 기저귀를 다 뜯어내서 우주복을 입혀 꽁꽁 싸매 둔 채로 생활하셔서 온몸에 발진이 생긴 상태로 이곳에 오셨지요. 우주복 다 벗기고, 수시로 목욕시켜 드리고 잘 말려 드린 후 햇볕을 쬐어 드렸어요. 그러니까 얼마 정도 시간이 흐른 후 온몸에 허물이 다 하얗게 일어나 떨어지더니 지금은 발진이 말끔히 없어지셨어요.”
“또 한 가지 특징이라면 가족 같은 분위기라고 할까요? 저희는 바깥에서 사 온 재료를 쓰지 않고 직접 재배한 채소로 음식을 대부분 만들어요. 시골 부모님이 농사지은 것들을 가져오기도 해요. 그랬더니 옛날 먹던 음식 맛이라고 어른들이 참 좋아하세요. 또 얼마나 접촉하는 걸 좋아하시는지 몰라요. 저희와 요양사들과 함께 서로 볼을 쓰다듬고 안아 주고 사랑한다고 말하며 등을 토닥이는 걸 그렇게 좋아하실 수 없어요. 여기 계신 여섯 분이 다 여성 분인데, 저희는 다 엄마라고 부른답니다. 그러면 저는 셋째 아들로 여기시고, 제 집사람은 셋째 딸이라고 불러주세요.”
부부는 많은 분을 모시다 보면 온전히 애정을 쏟을 수 없을거라면서, 사업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어른들에게 사랑을 한번이라도 더 쏟는다는 생각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말한다.
“여기 오신 모든 분은 가족을 등지거나 자녀가 있어도 돌봄을 받지 못하는 불쌍한 분들이에요. 가슴에 맺힌 한을 풀어 드려야하는데, 그걸 할 수 있는 건 오직 사랑뿐이라고 저희는 굳게 믿습니다.”
소박한 꿈
“앞으로의 계획과 바람을 말해 주세요.”
“여기 계신 분들, 그저 오래오래 건강하고 평안하게 사시는 겁니다. 또 지금 양지원 부지에 집 두 채가 지어지고 있는데, 다 80이 넘으신 분들이 이곳에서 여생을 보내려는 목적으로 시작하신 겁니다. 서로 돕고 행복한 여생을 보내는 자발적 실버타운이 조성되고 있는 중입니다. 저희도 보람 있는 일을 하면서 밥 먹고 살정도면 됩니다. 올해가 지나면 지금 단장 중인 꽃밭이 잘 조성될 겁니다. 그때 한번 더 오세요.”
부부의 말을 듣자니 그 소박한 꿈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운영하는 데 힘들지 않으시냐는 말에 가족들과 관심 있는 몇몇 분의 도움이 큰 힘이 된다며 힘들어도 가진 것 함께 나눈다는 생각으로 감사하며 생활하고 있다고 말한다.
“기도하면 꼭 필요한 만큼 주세요. 저희는 오늘 주신 것에 감사할 뿐이지요.” 부부가 얼굴을 마주 보며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라며 서로에게 공을 미룬다. 담양에 아무리 멋진 대나무 숲과 명승지가 있다고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두 사람의 고운 마음이 훨씬 더 아름답게 다가와 마음이 한결 푸근해짐을 느꼈다.